소울넘버 이야기

수비학으로 보는 조선왕조 / 1.태조 이성계

캘리코 2016. 2. 19. 17:49

수비학을 공부하다 보면 당장 내 옆에 있는 가족, 친구들의 생년월일을 제일 먼저 풀어보게 된다.

그 후 회사 사람들, 엑스 애인들, 현재 좋아하거나 미워하는 사람들의 프로필을 풀어나가다가, 나중에는 국내외 연예인, 정치인 등 사람이란 사람들은 모두 실습 대상으로 삼아본다.

나 역시 그러한 재미를 느끼던 중, 문득 평소 관심을 갖고 있던 역사 속 인물들이 궁금해졌다.

특히, 현대와 가장 가까운 왕조 국가인 조선시대 왕들은 사료가 풍부하기 때문에 그들이 가진 수식구조와 실제 사건들을 비교해보고, 이유를 유추해 보는 것이 매우 흥미로울 것 같았다.

이러한 이유로 짧은 역사 지식이지만 수비학적 관점에서 바라 본 조선왕조의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왕들의 생년월일은 양력, 음력이 모두 나와 있는 위키백과를 참고하였다.

(이 글은 2015년 8월에 수비학 커뮤니티에 올린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조선 27대 왕들의 프로필을 정리했던 파일>

 

 

1. 태조 이성계 (1335. 10. 27) 조선 개국년도 1392년 당시 연도카드 16

 

<태조의 수식>

이성계는 고려 무신정권의 핵심이었던 이의방의 일족으로, 3대 동안 함흥의 동북면을 지배하던 친원파 무인세력 집안의 마지막 지배권자였다. 드라마 '정도전'을 보면, 수년간 유배생활을 통해 백성들과 대면하면서 역성 혁명의 결론을 내린 정도전이 조력자로 이성계를 선택한 후 동북면으로 그를 찾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 때 정도전이 이성계 휘하의 군사를 보며 "이 정도 군대라면 무슨 일인들 성공하지 못하겠습니까?" 라고 하는데, 그 규모와 전투력도 대단했지만 사병들의 충성도가 매우 높았다고 한다.

이성계의 사병 집단인 가별초는 농병일치 집단이었다. 원나라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동북면의 지배권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고려에 투항한 이성계는 여러번의 활약으로 공을 인정받아 막대한 포상금을 받고 있었다. 거기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재산도 많았기 때문에 풍족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사들을 체계적으로 훈련시킬 수 있었다. 반면 복무기와 농번기를 기점으로 교대 근무를 하던 다른 군사 집단들은 전투력뿐 아니라 충성도도 매우 낮았다. 아마도 정도전은 이런 점을 간파하고 당대의 투 톱 장군인 최영과 이성계 중 이성계를 동업자로 점찍은 것 같다.

 

 

소울카드 4번과 문카드 10번은 추대된 임금이라는 점과 혁명을 통한 새 왕조로의 격변이라는 점에서 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자기가 지은 집이 아니라도 사이즈만 맞으면 잘 들어간다는 4번. 오랫동안 친원파로 살다가 원의 멸망을 간파하고 자기 실속을 야무지게 챙겨 고려의 공신이 된 점 또한 4번다운 면모로 볼 수 있다. 

이성계의 유즈풀 탈렌트를 보면 1,2,9 / 3,5,7 / 4 로 이루어져 있다. 명망높고 백성들에게 인기도 많았다고 하니 분명히 훌륭한 처세와 외양을 갖추었을 것이고, 남과 차별되는 자신만의 군사력을 발판삼아 현실적인 기준에 맞게 행동했을 것이다. 무신에서 새 나라의 태조가 되었으니 이것보다 확실한 독자 노선이 또 있을까? 또한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어떠한 기준으로 방향을 정했는지 엿볼 수 있는 속성이다.

흔히 조선을 정도전의 사상과 이성계의 무력의 합작품이라고 하는데, 실상 조선의 모든 기틀과 토대는 정도전이 마련했다고 본다. 그러나 이성계가 없었다면 혁명은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동북면에서 사병 집단을 양성하며 자신만의 왕국을 지배하고 있었던 이성계. 처한 환경에 따라 자기 자리를 확실히 매김할 줄 알았던 그의 능력과, 숱한 무공을 쌓아 백성들에게 신망이 두터웠던 점은 그가 왕에 추대되는데 큰 매력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숙원하던 한양 천도 후 이성계와 정도전의 즐거운 한 때>

 

2. 주요 이슈와 연도카드

1380년은 이성계가 혼란스러운 고려의 조정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할 수 있는 해였다.

그 계기는 지리산에서 벌어졌던 왜구 격퇴이다.(황산대첩)

왜구의 침략으로 몸살을 앓고 있던 고려는 군대를 파견하였으나 매번 실패하였다. 그러던 중 명령을 받고 출정한 이성계가 쏜 화살에 왜구의 장수가 죽었고, 이에 왜구의 기세가 크게 꺾이는 바람에 고려는 승리를 거두게 되었던 것이다.

이 해 이성계의 연도카드는 13, The death 였다.

이성계는 당시 죽을 수도 있는 전장에 나가 맡은 임무를 묵묵히 수행했기 때문에 고려에서 조정과 국민들에게 신임을 받는 영웅이 될 수 있었다. 신망이 두터운 관료이자 군사력을 갖춘 무장인 이성계 주변에는 자연스럽게 신진사대부가 몰려들었다.

이를 발판삼아 일을 도모하던 중, 1388년에는 조선 개국의 결정적 계기가 된 위화도 회군을 감행하게 된다.

1388년은 이성계에게 12, The haned man의 해이다.

3,12,21의 연도카드가 들어온 해에는 자신의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많고 다양한 사람들과 일을 수용하면서, 그들과 함께 살기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대방출해야 한다.

이미 신진사대부와 자신을 따르는 무인세력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던 이성계는 내부에서 지지하는 정도전과 정몽주 덕분에 반발도 무마할 수 있었다.

이듬 해 1389년은 그에게 또 한번의 death가 들어온 해이다. 이 때에는 거의 막판의 수순이라 할 수 있는 왕권 교체를 해버린다. 이로서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즉위했고, 3년 후인 1392년 7월 17일 이성계는 새로운 왕조를 개창한다.

16, The tower의 해에 새 나라의 국왕이 된 것이다.

연도카드 7과 16은 도전, 출발이라는 의미를 가지지만 16은 7에 비해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는 해이다. 이게 걸맞게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결정적 계기는 아들인 이방원이 온건개혁파인 정몽주를 죽인 사건이었다.

당시 이성계는 말에서 떨어져 몸을 요양하고 있었는데, 그가 없는 틈을 타 정몽주가 정도전을 비롯한 급진개혁파들을 모두 탄핵하여 유배해버렸다. 몸이 불편한 이성계는 아들 이방원에게 정몽주를 찾아가 자신들과 새 왕조 개창에 동참할 것을 권하라고 하였다. 정몽주는 고려 왕조를 유지할 뜻을 굽히지 않았고 이에 위협을 느낀 이방원은 수하를 시켜 정몽주를 살해한 것이다.

다시 권력을 잡은 이성계와 급진개혁파는 온건개혁파를 숙청하고 공양왕을 폐위시킨 후 조선을 건국하게 된다. 그야말로 역사에 남을 16번 연도카드를 보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후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대로 흘러간다. 요즘에는 '육룡이 나르샤'에서 다루고 있는 소재이니 드라마를 보면서 수비학적 요소를 찾아보는 재미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