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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_수비학 이야기

영화 속 수비학-터미네이터 2

by 캘리코 2016. 2. 13.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에 관한 수비학적 단상

 

수비학 수업에서 숫자 ‘9’에 대한 내용을 다룰 때 선생님이 자주 인용하시는 작품이 있다.

철이와 메텔의 우주 여행기인 에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이다. 여기서 999는 단 한 개가 부족해서 1,000이 되지 못한 숫자이다. 불교적 이야기지만 1,000은 세상에 없는 수, 극락의 숫자라고 한다. 999는 완벽한 극락과 대비되는 인간의 수, 극락보다 불완전해서 미움, 증오, 질투, 사기, 외로움, 갈증이 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인간적인 면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인간 세상을 상징하는 수이다. ,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최종의 숫자는 999까지이다.

수비학에서는 인간이 현실적으로 무언가를 꿈꾸고 만들어내면서 그 단계, 단계를 넘어가는 숫자를 1부터 8까지라고 본다. 그 다음 숫자인 9는 여덟 단계에서 응축되어 나온 에센스, 엑기스, 농축액이라 할 수 있고 그것은 현실과 육체를 넘어선 정신적 활동이나 형이상학적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이 내용을 배울 때 나는 영화 터미네이터 2에 등장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T-1000을 떠올렸다. 미래의 스카이넷 조직에서 보낸 T-1000은 이전에 등장했던 악당보다 훨씬 강하고 완벽해 보이는 터미네이터이다. 액체 금속으로 만들어진 덕에 어느 곳이나 자유자재로 통과할 수 있고, 접촉 가능한 물질(바닥, 사람 등)로 변형이 가능하다. 총과 칼에 공격을 받아도 금세 복원이 가능하고, 이제 끝났겠구나 싶었던(액체 질소에 얼어서 부셔졌던) 장면에서도 제철소 온도에 금속이 녹아 다시 부활했다. 그야말로 1000이라는 숫자가 상징하는 완벽한 모습이었다.

 

<출처: CGV>


<출처: CGV>

그에 반해 1편에서 악당으로 등장했다가 2편에서는 존 코너를지켜주는 선한 모습으로 등장한 터미네이터(아놀드 슈워제네거)T-800이다. 800이라니, 정말 인간의 시스템적 완성이자 한계를 나타내는 로봇명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매우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존과 함께 장난을 치고, 인간의 눈물에 반응을 보이며 진정성 있는 뚝심으로 사라 코너로부터 존의 유일한 아버지가 될 자격이 있는 대상으로 인정받기 까지 한다.

 

나는 T-800을 보면서 소울카드 1번과 8번을 떠올렸다. 매우 목표 지향적이며 저돌적이고, 본인 안에 인식된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모습이 1번 같았고,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는 그를 둘러싼 환경을 우직하게 뚫고 나가는 모습과, 기계이면서도 어느 순간 존에게 갖는 연민이 8번 같았다.

이런 관점으로 설날 특집으로 방영된 터미네이터 2를 다시 보는 중에, 자연스럽게 눈길을 끄는 것들이 있었다. 바로 영화에 나오는 숫자들이다. 주인공들이라 할 수 있는 T-800T-1000이 주는 숫자적 느낌도 나의 관심을 끌었지만 자세히 보니 이 영화에는 상징성을 가진 숫자들이 매우 자주 나오고 있었다.

 

T-1000이 극 중 현재인 1995년에 도착했을 때, 순찰 돌던 경찰이 이상한 상황을 감지하고 차에서 내려 무전으로 지원을 요청하는 장면의 대사는 이렇다.

“6번가에 6번 상황이 발생했다.”

1995년을 싱글 디짓으로 더하면 1+9+9+5=24. 2+4=6이다. , 666의 상황인 것이다. 성서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666은 짐승의 숫자이고, 이는 세계를 멸망시킬 존재로 인식되어 있다. 공포영화의 고전인 오멘에서도 이 숫자는 악의 상징으로 쓰인다. 스카이넷에 대적하여 그들을 파괴시키려는 저항군의 수장인 존 코너가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된 상황에서, 과거로 돌아와 존 코너를 없애려는 T-1000에게 666은 그 미션에 합당한 의미의 숫자라고 볼 수 있다.

그 후에는 주로 숫자 9가 많이 등장한다. 종말이나 멸망, 심판 등과 관련된 숫자로 9를 말할 수 있는데, 이것은 앞서 말했듯이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가장 마지막 숫자이면서 동시에 완벽함을 바로 목전에 두고 있는 숫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1999년에 지구가 멸망할 것이란 루머가 전 세계적으로 떠돌았던 것도 2000년이 되면 산 것과 죽은 것이 명백하게 나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초조함과 기대 때문 아니었을까? (참고로 타로 카드에서 20judgement를 의미한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T-1000이 경찰에게서 빼앗은 경찰차의 번호였다. 999081. 그 후에 차량 추격전에서 존과 T-800을 쫓던 화물차의 번호는 99932*였다.(보이는 대로 적어놓긴 했지만 빠른 장면 전환 때문에 숫자 뒷부분은 정확치 않다.) 또한 추격 도중 폭발이 일어나서 작은 다리가 무너지는데 그 교량의 번호는 9-11”이었다. 미국의 위급상황 구조 전화번호인 911이 연상되기도 하면서 무언가 안전의 마지노선이 무너지는 듯한 인상도 받았다.


<출처: CGV>


그리고 극 중 사라 코너의 나이는 29. 미래에서 터미네이터들을 보낸 시점은 2029년이다. 이것은 비단 숫자 9가 주는 극점의 느낌 뿐 아니라 다음 숫자인 30이 주는 완성, 풍요로움, 다양성 등과 대비되는 불완전성을 보여준다. 29에 비해 30은 무언가 더 원숙하고 어떤 체계들이 안정될 것처럼 느껴지는 숫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20대는 어떤가? 그 때 할 수 있는 건 그저 경험, 도전, 부딪히기, 좌절뿐이고 그럼에도 또 다시 고민과 시작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은 젊음 밖에 없다. 이렇게 미숙할 수밖에 없는 20대의 마지막이 바로 29세이고 그 나이를 넘겨 서른이 되면 어른의 나이대로 들어가는 느낌을 갖게 된다.

또한 29는 싱글 디짓으로 했을 때 2+9=11이 된다. 11은 수비학적으로 불길한 숫자이다. 수비학에서는 12를 숫자의 완성으로 보기 때문에 12에서 하나가 부족한 11은 자연스럽게 부족하고 불완전한 숫자가 된다. 사계절을 이루는 112, 도교에서 비롯된 12간지, 예수의 12제자 등을 보더라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12를 완벽의 수라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11이 상징하는 완벽에 도달하지 못한 미숙함이란 곧 젊음을 뜻하고, 그것은 이익을 따지지 않고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는 순수한 힘이기도 하다. 영화에 등장한 29라는 숫자는 스카이넷 조직이 생각하는, 혹은 인공지능 로봇 세상이 완벽할 거라고 꿈꿨던 사람들의 유토피아적 신념과 대비되는 의미로 다가온다. 아직은 미숙해 보이고, 한 발로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로워 보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노력해 볼 가치가 있는 인간다움의 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라 코너와 스카이넷은 자신들의 목표를 위해 그토록 끈질긴 몰입을 하는 것 같다. (참고로, 121+2=3이 되고, 3은 최초의 면을 이룬 숫자이기 때문에 312, 21은 완성이라는 공통된 의미를 가진다.)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숫자는 1997829일이라는 날짜이다. 이 날짜를 설명하기 전에 잠깐 영화의 스토리를 요약하자면, 터미네이터 1편에서 사라 코너를 죽이지 못하고 파괴된 T-800의 잔해와 CPU칩을 사이버다인이라는 회사가 입수했고, 그것을 기반으로 마일스 다이슨이라는 연구원이 혁신적인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개발해낸다. 이것은 미군의 스텔스 기의 기술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켰고 군사 전략 프로그램인 스카이넷이 작동하게 되면서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스스로 생각할 줄 알았던 스카이넷은 결국 인간의 국방 전략 결정권을 빼앗았고, 위협을 느낀 사람들은 스카이넷의 전원을 뽑으려고 한다. 스카이넷은 프로그램을 보호하기 위해 적군이자 개발자인 미국을 제거하려고 러시아에 핵미사일을 발사한다. 그렇게 발생된 핵전쟁으로 30억의 인류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그 날짜가 1997829일이었다. 이 날은 영화의 부제이기도 한 심판의 날이 된다.

눈치 챘겠지만 1997.8.29.를 싱글 디짓으로 더하면 1+9+9+7+8+2+9=45. 4+5=9. 역시 9라는 숫자가 도출된다. 영화에서 사실상 인류의 마지막 날로 설정된 날이 ‘9’의 날인 것이다. 이쯤 되면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숫자가 가지는 이러한 상징성들을 모르고 썼을 리가 없다는 추측이 강하게 든다. 인류와 지구의 멸망이라는 소재는 아주 오래전부터 서양의 세계관을 지배해 온 기독교적 시각에 근간을 두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이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연출인 것 같다. 수비학 역시 우주와 생명의 순환과 단계들을 숫자가 가진 의미를 통해 풀어낸 학문이기 때문에 기독교적 역사관, 세계관을 동일하게 가지고 있다. 타로 카드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연결성을 생각해 보면 영화에 나온 숫자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등장했는지 수비학적으로 충분히 풀어 볼 수 있다.

결국 날짜가 주는 상징성 때문에 1997829일이 인류 멸망의 심판의 날로 지정된 것 아닐까? 거기다 하루를 넘긴 830일은 1+9+9+7+8+3=37. 3+7=10이 된다.(101+0=1로 다시 치환된다.) 수비학적으로 10은 또 다른 세상으로 진입하는 새로운 단계의 숫자이다. 1부터 8까지가 인간이 이루어낸 시스템이라면 9는 거기서 나온 응축된 정신 에너지이다. 그 다음 109에서 담긴 모든 것이 현실적으로 쓰이는 실용과 물질적 단계로 넘어가는 숫자이다.

금이 제련과 가공의 단계를 거쳐 반도체가 되어 인간에게 유용한 물질로 쓰이는 것, 점토 등의 천연 재료가 열과 냉각을 통해 세라믹이 되어 도자기로 유통되거나 생체의학적인 용도로 쓰이는 것이 바로 숫자 10이 의미하는 단계이다. 인간의 모든 기술이 집적된 스카이넷이라는 프로그램이 이제 인간의 손에서 빠져나와 스스로의 세상을 만들고, 터미네이터를 보내 적의 존재 자체를 없애려는 영화 속 세상 또한 10과 같은 단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멸망하기 전의 인류가 완벽한 시스템적 세계라고 꿈꾸었던 인공지능 환경은 바로 1997830일부터 시작된 것이다.

 

<출처: CGV>


오랫동안 물질과 과학을 신봉하는 세계에 살면서 이성은 합리적이고 옳은 것, 감정은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이며 틀린 것이라는 생각이 사람들을 지배해 왔다. 하지만 쏠림과 추앙이 한 쪽으로만 강하게 집중될수록 사실 그 반대적 욕구가 우리의 실체 아닐까? 실제로 인간은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자신의 욕구에서 오는 느낌과 욕망을 기반으로 행동하고 선택하면서 사니까 말이다.(물론 순수하게 자기 욕구만은 아니다. 세상의 정답을 자기 욕망이라 믿고 싶어 하는 마음이 많을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매우 감정적인 개체이고, 쓸데없어 보이는 그 감정이라는 것이 어쩌면 인간의 총합이자 전부일 거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과학과 공학적 기술을 통해 부족한 이성에 살을 붙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 역시 수비학에서 말하는 우주의 순환 즉, 1부터 9까지의 순환체계와 같다.

인간이 혼자 있을 때는 아무 것도 없지만 그 자체로 무한 가능성을 가진 1이다. 그 후 스스로 고민을 하며 분열되는 듯한 아이디어를 꿈꾸는 2를 지나 다양한 생각들과 창의적인 활동을 해보는 3의 단계가 된다. 그 생각들을 모아 한 그릇에 담는 것이 4이며, 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규칙을 정하고 교육을 통해 배우는 것이 5. 배움을 통해 만든 것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해 나누는 6을 지나면 많은 관계에 걸쳐있던 에너지를 한 방향으로 모으게 되고 이것이 7이다. 이렇게 집중된 힘으로 시스템을 돌리려고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는 것은 8이고, 열심히 하다 보니 느껴지는 충만함은 9로 표현한다. 이 단계들을 지나면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다시 1로 돌아가고, 1~9의 숫자는 하나의 사이클을 이루면서 순환한다. 그러나 도돌이표처럼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의 순환이 끝나고 다음 번 순환이 시작될 때는 처음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다. 나선형 계단처럼 순환하면서 올라가는 것이다. 인간이 보다 완벽하고 편리한 세상을 꿈꾸면서 자신의 부족한 면모를 기계 시스템으로 보완하는 노력 또한 시대가 지나고 세대가 더해지면서 계속해서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1991년에 터미네이터 2를 제작하면서 수비학적인 상징을 영화에 넣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런 생각 자체가 망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온갖 감정이 난무하고 감정 덩어리인 인간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인간답고, 완벽해 질 여지와 여백이 있기에 살만한 세상인 거라고 영화를 통해 말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이 만끽할 수 있는 9를 넘어가면 오차 따위는 찾을 수 없는 완전한 세상이 펼쳐지지만 이미 그곳에는 인간이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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